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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복하면 대한민국 전통의상입니다

by 쁘니's 2022.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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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하면 대한민국 전통의상입니다.

우리 한복이 얼마나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지 자국민조차 흔하게 넘기기에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한류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나
음식 그리고 전통한복까지 관심을 받고 있기에 자부심을 갖고 잘 알아 두어야겠습니다.

한복의 명칭

한복이란 이름은 서양문물이 들어오던 19세기 말에 양복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서양에서 들어온 양복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기 때문에 이를 구분할 수 있는 이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전통 의상이라는 의미로 "한복"이라고 지어졌습니다.

 

한복은 그동안 역사의 흐름에 따라 꾸준히 변화해 왔습니다. 소매통이 좁거나 넓어지거나

저고리의 길이가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등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한복도 계속 변형되어 왔습니다.
삼국시대부터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고려, 조선 등 시대적 변화에 문화를 받아들여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시대에 우리가 보게 되는 한복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일반 한복으로 많이 입었기에 한 종류의 한복 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행사나 어떤 특정한 날에 따라 한복 종류를 달리 입었습니다.

 

한복()은 한민족 전통의상을 말한다. 북한에서는 "조선옷"이라고 부르나 본질은 동일합니다.

"한복"에 대하여 흔히 보통 '조선 후기'의 복식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엄밀히 말해서 한복은 특정 시기의 특정 복식이 아닌 "한민족의 전통의상"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흔히 시대별로 나뉘는 한복을 보고 그것만 떠올리는 경우가 적지 않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 시대에 유행/탄생한 양식을 말하는 것이지 그것만이 전부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사진을 포함,
다양한 자료들에서 보이듯 한 시대에 다양한 양식의 한복들이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즉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형태가 변해온 다양한 전통의상들을 모두 가리키며, 이러한 의상들은 시대의 유행과
타국과의 문화교류에 따른 상호작용으로 타국에 미치거나 타국의 요소를 받아들이며 지속적으로 변천해왔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인식되는 한복에 대한 주된 고정관념은 어디까지나 조선 후기의 것에 지나치게 국한되어 있으며
그 정보의 질과 양도 다른 시대에 비해 월등합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정보들 또한 조선 후기식 의복에 집중되어있으며,
그 이전의 옷들은 "고대한복" 또는 "삼국시대옷", "조선 전기 한복" 같은 식으로 구분되어 따로 정리되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 대한민국에서 한복은 생활복의 성격을 잃고 행사용의 성격으로써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복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식들이 있지만 주로 조선말기
 이후의 변형된 양식만을 고수하고 있으며 실생활용으로 개발된 개량한복은 여러
문제점들을 보이면서 사장된 실정입니다. 그나마 전통에 대한 관심과 고증이 상승하여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지만
아직까진 갈 길이 멀어보입니다.


그래도 한복 문화는 급격한 서구화로 인해 비록 주류에서 밀려났지만 지속적으로 유지 및 변화하고 있으며, 전통이란 정체성을 떠나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들을 통해 그 영역을 넓혀가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한복 문화'라는 명칭으로 국가무형문화제로 지정되었습니다.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 종목입니다.

                                               

 

                         

한복의 역사

한복이 기록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사례는 고구려 벽화입니다.

기본 구조는 상의, 허리띠, 하의, 모자(또는 두건)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후 차츰 변화하여 상의가 짧아지고 허리띠는 고름으로 간소화 되었으며

두건은 다른 형태의 모자로 대체하였습니다.

이후 만주족 복식을 수입하여 만든 마고자와 서양 복식을 수입하여 만든 조끼를 추가하여

지금의 한복 형태가 완성되었습니다. 여기에 한복을 현대 문화에 맞게 크게 간소화한 생활한복

고름이 단추로 대체되고 소매가 줄어드는 등 일상 생활에서도 더욱 입기 편하도록 만든 형태입니다.

여성용 저고리는 짧아지고 치마는 더욱 길어져서 가슴을 덮는 형태가 되었는데, 마치 서양의 볼레로와 드레스를 입은 구조와 비슷합니다. 평복은 기존의 고유 형태를, 관복과 공복은 중국식 복식을 받아들인 이분적 복식 제도였으나 상류층도 일상에서는 고유 형태의 한복을 입었습니다.

한복은 역사적으로 큰 변화보다는 차츰 변화하여 현재의 형태를 가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한복은 기본적으로 상유하고의 형태를 벗어난 적이 없었으며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기본적으로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포(겉옷)이나 치마를 입었습니다.

 

1) 선사시대

 

구석기시대는 가죽을 이용한 옷을 입었을 것이라 추정하며, 신석기 시대신석기시대는 실이 발명되어 옷감을 짜 입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신석기시대 대표 유물인 가락바퀴는 실을 짜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고조선은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서 자리 잡은 국가로서 남방계 복식 근간인 한풀와 달리 북방계 복식 근간인 호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옷을 입었습니다. 학계에서는 초기 한복이 스키타이 복식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거나, 또는 스키타이 복식 그 자체가 전래하여 고대 한민족 (예맥족) 문화에 맞게 발전한 것으로 봅니다.

유목민족 복식의 특징을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에 남방계식 상의하상(上衣下裳) 치마보다 북방계식 상유하고(上襦下袴) 바지 위주로 발전하였으며 말타기와 활쏘기를 할 때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저고리 섶이 왼쪽 여밈(좌임, 左衽)이다. 남녀 할 것 없이 기본적으로 바지와 저고리 위에 긴 포를 입고 허리띠를 매는 형식이며,

여자는 바지를 입은 뒤 치마를 겹쳐 입었습니다.

고조선과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부여에서는 해(日)=흰(白)이라는 뜻으로 흰 옷을 숭상하였는데,

이러한 전통은 한국전쟁 이후까지 오랫동안 이어지며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무채색 옷을 좀 더 선호하는 경향으로 나타납니다.

 

 

2) 삼국시대

기본적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같은 복식을 입었으며, 여기에 지역별 특색을 추가로

더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기존 한복과 더불어 중국식 의복 문화를 새롭게 수입하고,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의복 문화를 일본 열도로 수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삼국시대 때 일반적으로 공유하던 복식들. 의복은 저고리, 두루마기, 바지, 치마, 가늘거나 넓은 허리띠(조대, 대대)를 기본으로 하며 관모(조우관)  (절풍, 조미관), 갓, 책 등)와 신발(짚신, 갖신(가죽신), 나막신 등) 까지 완전한 구성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남녀노소 귀고리를 거의 필수로 착용합니다.

삼국시대의 여성 한복. 기본 치마저고리 위에 포(袍)를 입고 허리띠를 둘렀다. 도식화

3) 고구려

고구려는 기본적으로 통이 넓은 바지와 소매통이 좁은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긴 포를 입는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여기에 치마를 더 입었고, 신분에 따라 저고리에 문양을 넣기도 하였으며

남성들은 바지의 종류가 달랐다고 합니다. 나중에 중국식 복식을 수입한 뒤로는 소매통이 넓은 옷을 입기도 하고 저고리의 좌임과 우임을 혼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고구려의 바지는 태 구고, 대구고, 적 황고, 공고 등이 있으며, 색은 자색, 적색, 적황색, 검은색, 소색, 황갈색, 고동색 등 여러 가지였습니다.여성들의 치마는 색동 치마와 주름치마가 있었습니다. 두 종류 모두 중국, 일본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문화적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국왕은 대수 자포에 백라관을 썼다고 한다. 또한 귀족들이 따로 관복으로 입는 포는

중국에서 수입해온 것이기 때문에 소매통이 매우 넓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는 기다란 저고리를 고정하기 위해서 끈을 허리에 맸는데 이를 대라고 부릅니다.

고구려의 대의 종류는 피혁대, 포백대, 과대 등이 있었습니다. 피혁대는 백 위대, 백피 소대, 소피대 등 가죽으로 된 대를 지칭하는 것으로 고분벽화 기마인물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포백대는 직물로 만든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대로서

귀족들은 넓은 폭의 띠를 두르고, 서민층은 폭이 좁은 띠를 둘렀으며, 시종자나 마부와 같은 천민들은

사대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과대는 형대 또는 포대에 금판 장식이 달린 과반을 부착하고, 그 한쪽 끝에는

교구, 다른 한쪽 끝에는 대선 금구를 달아 허리에 찾습니다.

 

무용총 무용도

고구려 고분 벽화 속 한복 입은 여인들을 보면 고구려의 화장 방식을 할 수 있으며,

고구려의 화장은 당나라의 홍장 분식과는 다르게 연지곤지 화장을 했습니다.

또한 고려시대 한복과 비슷하게 허리띠를 하지 않는 모습도 보입니다. 

 

4) 백제, 가야

백제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미의식이 발달하여 유물 등을 보면 삼국 중

가장 여성스러운 특징이 많이 나타납니다.
또한 반비나 배자 등은 남북국시대 때부터 생겼다고는 하지만, 벽화나 유물들을 추측해 보았을 때

이미 겉옷을 입는 복식 문화는 이전부터 등장했음을 할 수 있습니다.

백제의 갑옷은 일본의 갑옷과 큰 차이가 없는데 이것을 보아 두 국가의 교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천수국 만다라 수장에서 발견된 백제의 여성 복식을 보면 층층이 단을 이루는 치마가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치마는 다른 어느 국가에서도 나타나지 않은 백제의 특징으로 보입니다.

백제와 신라의 신발 중에서는 일본의 게다와 같은 ㅠ자형 나막신이 있다.
백제의 여성들이 고구려의 여성들처럼 연지곤지를 발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백제의 화장품 제조 기술은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
가야는 백제, 신라의 복식 문화와 유사성을 띤다. 두 국가보다 소박하지만, 섬세한 면이 강합니다.

 

 

5) 신라

신라는 지리적인 위치상 백제와 고구려보다 비교적 해외 교류가 늦었기에 좀 더

토착적인 문화가 오래 발전하였습니다.
다른 두 국가보다 화려했으며 금세공이 발달하였다. 김춘추의 복식 개혁으로 당나라식 의복을 대거

수입하였고, 귀족들 사이에서  당나라 풍이 유행해 당나라식 한푸처럼 저고리를 치마 안쪽으로 집어넣어 가슴까지 끌어올리고 기다란 숄 같은 표를 두르는 복식을 입기도 했다. 동시에 기존 형태의 한복도

여전히 공존했으며 반비나 배자가 본격적으로 유행하였습니다.
한국이 남북국시대이자 중국이 당나라이던 시기는 한중일이 모두 비슷한 형태의 의복 문화를 보입니다.

그런데도 동시에 한국은 중국과 일본보다 확연하게 북방계 의복 문화의 특징이 꾸준히 나타납니다.

 

 6) 발해

고구려의 복식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하며, 별개로 당나라의 복식도 수입하였기 때문에

당나라 한 푸와 유사점을 띄는 복식도 별도로 존재했습니다. 

 

7) 고려

고려는 새롭게 송나라 복식을 수입하였으며 기존 한복과 같이 공존하는 형태로 입었습니다. 또한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평상복으로 백 저포(白紵袍)를 애용하기도 했습니다. 백 저포는에 기록되어 있으며 흰색 모시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고려 여인들은 노란 치마를 즐겨 입었다고 합니다.

원나라와 접한 뒤로는 몽골 복식이 일부 들어왔으며 이때부터 저고리가 짧아지고 고름이 생겼습니다. 
여담으로 고려는 원나라와 협상하며 '문화와 풍속을 간섭받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아냈기 때문에 몽골풍 양식들은 고려에서 필요로 인해 직접 수입한 것이거나 또는 교류로 자연스럽게 전해진 것이 대부분입니다.

 

8) 조선       

조선 초기부터 임진왜란 전후 때까지 약 200년 간 입었던 치마저고리로, 저고리가 무척 크고 길었습니다.

그리고 병자호란 이후부터 기존의 크고 긴 저고리를 조금씩 줄여 입기 시작하는 동시에 

이때부터를  애용하기 시작합니다.

 

9) 근현대 및 현재

 

 

근현대의 여성용 한복. 구한말에 이르러 오늘날 한복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근접하게 되었고

옷고름이 부각된 동시에 양복이 들어오며 붕어 배래가 유입됩니다.

70년대로 들어서는 옷깃과 동정의 폭이 좁아져 v자 형태를 이루게 되어 2000년대 초까지 유지됩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옷깃의 폭이 넓어지고 직배래와 목판깃, 당코깃과 같은 전통적인 디자인이 복고하여 유행하는 동시에 이를 기존의 근현대식 저고리로도 적용시키는 등 여러 디자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한반도가 서구화되어가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요소들 또한 이러한 흐름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한복은 이전의 서구 양식을 중점으로 유지되어가기 시작했고 한복의 발전과 디자인 또한 구한말의 양식을

가지고 이런저런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현대 한복, 그나마 실생활적 요소가 있던

기존의 서구 양식과는 달리 철저히 예복의 성격을 취하게 되면서 결혼식이나 설날, 추석과 같은

특정 시기에만 입어지는 옷으로 변화하였습니다.

평균적인 의복 길이가 매우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저고리는 후기 양식 또는 서구 양식의 짧은 길이를,

치마는 서구식 어깨허리치마이지만 발끝까지 덮어버리는 엄청난 길이를 자랑합니다.

물론 구한말의 사진 속에서 저러한 양상들이 확인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확인되는바

대부분 양반 규수와 같은 높은 사람들이거나 기생들이었지 일반 평민들 사이서는

확인되지 않는 양식이었습니다. 하나 그것이 현대로 들어서며 일반화된 것입니다.

더욱이 기존의 흰색 중심에서 벗어나 다채롭게 염색을 하며, 다양한 무늬들과 장식들을 넣어

화려하게 꾸밉니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실생활에 이용되지 못하고

문화적으로 고립되는 현상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의복으로서의 가치 대신 오로지 화려함과 보여주기에만 치중되었기 때문입니다.

서구 양식의 연장선에 있다 보니 저고리가 후기 양식만큼 짧아도

치마가 다 덮어줘서 신체가 노출될 일은 없습니다.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남북한 모두 이러한 양상을 즐겨 입었으며 2020년 기준, 

남한은 그 수가 줄었지만, 북한 조선족들에겐 여전히 널리 쓰이고 있는 양식이다.

하나 그 수가 줄었다 뿐 지금도 여러 미디어를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의 전통의상 구별

아시아의 전통의상
한민족
한복
한족
한푸
만주족
치파오
야마토 민족
기모노
인도인
사리
베트남인
아오자이
몽골인
태극인
쑤타이
미안마인
론지
북방 유목민
호복
이슬람
히잡
차도르
니캅
부르카
아바야
만주족
마과
     

 

1. 남자 의상 한복

1) 평상복
① 속옷 : 속적삼, 속고의
② 저고리 : 적삼, 겹저고리, 솜 저고리
③ 바지 : 고의, 잠방이, 겹바지, 솜바지
④ 조끼, 마고자, 두루마기

2) 예복
① 평례복 : 평상 복위에 두루마기
② 혼례복 : 평상 복위에 옥색 두루마기, 관복, 각대, 사모, 목화, 포선
③ 상례복 : 바지저고리에 베 중단, 굴건제복

3) 전통혼례복

(1) 사모관대
신랑이 입는 옷은 보통 '사모관대'라 일컬어지는 관복 일습인데,
평민 양반의 구별 없이 사모, 단령, 흉배, 각대, 목화를 착용했습니다.

2) 사모

사모는 원래 작품을 가진 자가 평상복에 착용하던 것이나,
작품을 갖지 않은 자라도 혼례 때에는 이를 쓰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재료는 검은색 실이며 뒤쪽에 붙은 양쪽 날개에는 구름무늬를 넣었습니다.

3) 단령
단령은 관직자가 평상복으로 입던 옷으로,
작품에 따라 홍색, 청색, 흑색 등의 비단으로 만들었으며,
혼례 때에 입던 단령은 주로 청색 계통이었습니다.
단령에는 흉배를 다는데, 보통 두 마리의 학이나 구름 등의 모양으로 수를 놓았습니다.
단령을 입은 뒤 허리에는 각대를, 신발로는 목화를 착용하였습니다.

4) 목화
목화는 원래 조선조 때 문무백관이 평상복에 신던 신발인데, 혼례 때에는 서민들이 신었습니다

  • 양반 남자 한복 입는 순서
  • 기본: 속적삼ㆍ속고의 → 속바지 → 저고리ㆍ바지 → 버선ㆍ 대님 → 행전 → 중치막 → 대창의 → 도포 (→ 쾌자/전복/답호 등) → 세조대(많이들 세조대가 허리띠인 줄 아는데, 절대 아니다. 즉, 허리에 매는 것이 아니다. 옷고름 위에 매는 것이 정석이다.) 관복 착용 시: 중치막이나 대창의 위에 관복을 착용했다. 중치막은 조복이나 겉옷의 아래에 받쳐 입었고, 대창의는 관복 아래에 받쳐 입었다. 소창의는 중치막이나 대창의를 겉옷으로 입을 때에 그 아래에 입었다.
  • 출토 유물을 보면 사폭 바지를 입기 전에는 남자도 개 당고, 합 당고, 세 가닥 바지 등의 형태인 하의 속옷을 여러 겹 겹쳐 입었다.
  • 평민 남자: 속적삼ㆍ속고의→속바지→저고리ㆍ바지→버선ㆍ대님→행전 정도



2. 우리나라 여자 의상 한복

 

1) 평상복
① 속옷 : 속저고리, 속적삼, 다리속곳, 속속곳, 바지, 단속곳
② 치마
- 모양(통치마, 풀치마, 스란치마)
- 안감의 유무(홑치마, 겹치마)
③ 저고리
- 봄·가을 (물 겹저고리, 박이 겹저고리)
- 여름 (적삼, 깨끼저고리)
- 겨울 (솜 저고리)
④ 마고자, 배자, 두루마기, 버선

2) 예복
① 평례복
- 젊은이(다홍치마, 노란색(연두색) 회장저고리)
- 중년 이후(남치마, 옥색 회장저고리)
② 소례복 : 당의, 화관(족두리)
③ 혼례복 : 원삼(활옷), 한삼(흰 수건), 화관(족두리), 용잠, 도투락댕기
④ 상례복 : 깃 광목으로 지은 치마, 저고리, 흰 족두리, 짚과 삼으로 엮은 띠, 짚신
⑤ 기제 사복 : 옥색 치마저고리

3) 전통혼례복
1) 활옷
원래는 궁중에서 의식이 있을 때에 왕비가 입던 대례복이었으나,
후에는 서민의 혼례복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활옷은 홍색 비단에 청색으로 안을 받쳐서 만들었는데
이는 청색(여성)과 홍색(남성)의 화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원삼
고려시대부터 대례복으로 궁중여인들과 신부의 웃옷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황후는 황색, 왕비는 홍색, 비빈은 자색, 공주나 옹주는 녹색 원삼을 입었는데,
그중에서 녹색 원삼이 서민층의 혼례식에 사용되었습니다. 민간 원삼에는 금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3) 대대
홍색 공단에 심을 넣어 만들어 금박 무늬를 찍습니다.
활옷이나 원삼을 입은 뒤 앞가슴께에 대대의 중앙이 오도록 대고 양쪽으로 돌려 뒤에서 묶어 늘어뜨립니다.

4) 스란치마/대란치마

스란치마는 소례복에 입고, 대란치마는 대례복에 입던 치마입니다.
금박 무늬가 찍힌 천을 덧댄 스란단을 한 층 묻힌 것이 스란치마리고, 두 층 붙인 것이 대란치마 입
니다. 가례나 길례 때는 속에도 남색 스란치마를 입었습니다.

5) 족두리
원래 몽고에서 여인들이 외출할 때에 쓰던 일종의 모자였으나,
고려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로 모양이 왜소해져 머리 장식품으로 변하였습니다.
영조 때의 가발 금지령에 따라 왕비나 세자빈이 칠보족두리를 쓰면서부터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 양반 여자 한복 입는 순서
    • 기본: 다리속곳ㆍ가슴가리개 → 속속곳ㆍ속적삼 → 속바지ㆍ속저고리 → 단속곳 → 너른 바지 → 무지기 치마 → 치마 → 저고리
    • 궁중: 다리속곳ㆍ가슴가리개 → 속속곳ㆍ속적삼 → 속바지ㆍ속저고리 → 단속곳 → 너른바지 → 무지기치마 → 대슘치마→ 겉치마 → 저고리 → 당의/단삼/장삼
        여자는 바짓부리를 정돈하여 고정시키지 않기 때문에 버선을 언제 신어야 한다고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가난한 평민들이 복식을 다 챙겨 입기에는 무리가 컸던 데다 복식 금제로 인한 제약 역시 존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층이나 직업에 따른 변화가 있었습니다. 입는 옷에 따른 변화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평민 여자: 속속곳ㆍ가슴가리개→속저고리→속바지→단속곳→치마→저고리 (버선)
정도로만 입었을 것이다.

원래는 치마를 오른쪽 자락이 위쪽으로 가게 입는 것이 흔했으나, 개화기쯤부터 양반은 왼쪽 자락을 위로,

기생 등의 특수계층이나 천민은 오른쪽 자락을 위로 입게 되었다고 한다.

 


6) 퓨전한복
웨딩드레스 대신에 한복을 입는 신부들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퓨전한복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멋을 살릴 수 있고 신선한 결혼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찾고 있습니다.

7) 두루마기
원래는 남자가 걸리던 한복 구성 중에 하나였으나 시대가 흐르면서

남녀 모두 외출할 때 겉에 입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8) 갖저고리
이는 쉽게 말하면 겨울용 한복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 겨울 방안용으로 즐겨 입었다 보니 한복에 털이 달려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9) 색동 한복
색동 한복은 원래 아이들이 많이 입었던 한복입니다.

10) 쾌자
쾌자는 소매가 없는 조끼 형태의 한복을 말합니다.

저고리 위에 덧입는 여자 한복이다 보니 화려한 경우가 많습니다.

11) 당의
궁중에서 입었던 한복 복식으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궁에서 입었던 것만큼 문양을 새겨 화려함을 갖고 있는 한복입니다

12) 생활한복/일상한복

대한민국의 문화 콘텐츠가 국가들에 많이 소개되면서 대한민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어보는 행사나 한복을 사가는 경우가 상당히 늘어나고 있으며 한편, 문화관광부와 민간이 참가한 한복 패션쇼와 전시회는 전 세계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일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한복에 대한 인식

 

정부 차원에서 한복을 국가 브랜드의 일환으로 육성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과 달리

한복에 대한 대중의 인식 부족은 현재 한복을 계승하고 발전하려는 노력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명절에도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외면당하는 한복의 현주소를 타개하고자 하는 데에는

의견이 나뉩니다. 개량하고 생활에 맞도록 변화를 추구하는 한복이 결국에는 한민족 고유의 의복 자체를 상실하게 한다는 주장과 현대인에게 외면받지 않으려면 쇄신을 통해 한복을 입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의견이 양립하고 있습니다.

 

 한편, 한복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교육 부족으로 한복에 대한 이해와 친밀도가 더욱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으며 일본의 현실과 종종 비교됩니다. 보통 원화로 천만 원을 호가하는 기모노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복이자 그 예우도 높아 성년식에 맞춰 기모노 맞춰 입기 교육이 이뤄지고 많은 사람들도 착용합니다. 그러나 한복은 1년에 한두 번 입는 정도에 그치는 데다 예복으로도 그 쓰임새를 잃고 있어 구매 의사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으며 이에 따라 한복을 배울 사람들도 교육받을 곳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한반도가 서구화되어가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요소들 또한 이러한 흐름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한복은 이전의 서구 양식을 중점으로 유지되어가기 시작했고 한복의 발전과 디자인 또한 구한말의 양식을

가지고 이런저런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현대 한복, 그나마 실생활적 요소가 있던 기존의

서구 양식과는 달리 철저히 예복의 성격을 취하게 되면서 결혼식이나 설날, 추석과 같은 특정 시기에만

입어지는 옷으로 변화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생활환경, 문화에 따라 옷차림은 많은 변화가 왔고

예복으로 입게 된 한복에 대한 인식 부족과

국민의 외면을 더 이상 손 놓고 보면 안 되는 시점에 왔습니다. 

우리 선조들께서는 수많은 침략과 슬픔 속에서 우리나라, 우리 민족, 우리 한복, 우리 가족, 우리 공동체 등등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소중하게 지켜왔습니다. 우리 선조분들께서 잘 지켜내셨듯

이제는 후손들이 잘 지켜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먼 미래보다 당장 100년 200백년 뒤에 나의 아이들이 이 나라, 이 땅에서

대한민국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가 계속 이어

나갔으면 합니다. 

내나라, 우리민족의 문화를 함께 잘 지켜나가보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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